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대학교 4.18 학생 시위 (문단 편집) === 고려대생 사망자 1명 발생 ===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1460|고대신문 관련 기사]] 4월 18일의 사건으로 인하여 고려대는 '''60년 동안 4.19 혁명으로 인한 사망자가 없던''' 기이한 학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4월 19일 당일에는 이미 시위 대오가 지친 상태였던 데다 제1공화국의 경찰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학생회 간부들이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여서 조직적으로 대열을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18 고대생 의거의 60주년을 맞는 2020년에 60년만에 4.19 혁명의 고려대 희생자를 발견하였다. 유일한 고대생 4.19 혁명 희생자로 확인된 김왈영(金曰寧)은 서울 출신으로 1935년 7월 3일생이다. 서울 중앙고등학교[* 공교롭게도 이 사건을 일으킨 깡패들의 두목 이정재 역시 중앙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정확히는 중앙고에 입학했다가 휘문고로 전학갔다.]를 졸업해 1954년 4월 1일 고려대학교 문리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1956년 휴학하고 군에 입대했다가 전역한 후 1960년 4월 당시에는 복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왈영 열사는 4월 19일 데모 학생들이 탄 차를 몰고 경무대 입구 바리케이드를 뚫다 목에 총상을 입었다. 이후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5시경 사망했다. 한동안 조명되지 않았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2020년 '4.18 의거 60주년 특별전'을 위해 전시 자료를 준비하던 중 언론에 보도된 사망자 명단 속 ‘고대문리대 김일녕’을 찾았다. 검토 끝에 '김일녕'이 고대생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국립4·19민주묘지 안장자 기록과 ‘김일녕’이라는 이름으로 전산화된 고려대학교 학적부의 생년월일과 사진을 비교해 본 결과 '김왈영'임을 확인했다. 이는 당시 보도 과정에서 ‘김왈영’의 ‘왈(曰)’을 ‘일(日)’로 착각하고 ‘김일녕’이라 오기한 탓이었다. 게다가 김왈영 열사도 휴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4월 18일 고려대학교 시위 대열에는 참여하지도 않았고 당일 경무대로 나간 것도 홀로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가지 우연이 기가 막히게 겹쳐서 60년 동안 고대 출신 사망자가 밝혀지지 않은 것.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학생회 주도 공식 대열에서 사망자가 없었던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